2020.08.14 11:01로그인
오늘의 한국~ 생약수집소 인터뷰
  이  름: 관리자   조회수: 467   시  간: 2016.09.02 16:05
  이메일:   홈페이지:

뉴스 와일드에 이어 월간 코리아 투데이 오늘의 한국에도

 생약수집소 기사가 나왔습니다

아버지께서 피,땀으로 해 오신 50년 전통의 생약수집소~

이젠 아들,딸들이 잘 해 나가겠습니다

 

 

“아직까지 약초에 관한 한 아빠의 ‘매의 눈’을 따라가기는 힘듭니다. 나무 하나를 두고도 채취 시기, 이용 부위에 따라 틀립니다. 이른 봄이나 늦가을에 따야 약효가 좋은 것이 있듯이 약재마다 서로 틀려 제대로 아는 것이 어렵습니다. 감초, 맥문동, 망개나무 뿌리 등으로 만든 차는 먼지에 좋습니다.”

“어릴 때부터 약초를 캐온 아빠의 삶은 너무나 구구절절해 스토리가 많습니다. 아빠의 이름은 송성실로 성실 그 자체입니다. 이룰 성, 열매 실로 웅녀찮게 약초와 관련이 있습니다. 너무 성실해 양심에 걸리는 일을 못하니까 큰돈은 벌지 못했습니다. 송미향이란 제 이름 역시 아름다운 향기로 약초와 무관하지 않아 우연 치고는 좀 특이하지요? 지금 하는 부녀지간 일이 다 이름과 연관 있는 것이 신기합니다. 가을에는 송이도 많이 하는데, 어떤 이는 제 이름을 송이향으로 바꾸라고도 합니다.”

경남 함양군 안의면 ‘함양토종약초시장’에서 약초를 판매하고 있는 송미향 생약수집소 대표의 말이다.

52년째 약초를 캐고 따온 아버지와 그의 뒤를 이은 딸이 만들어 가는 함양의 ‘약초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약초시장을 찾은 지난 3월초 아직 본격적인 약초 철이 아닌데도 생약수집소에는 주문 전화가 걸려와 간혹 인터뷰의 흐름을 끊었지만 굳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온 가게의 명성을 확인하는 듯해 마음이 더 유쾌했다.

 

▲ 약초 향 솔솔 풍기는 『동의보감』의 고장

예부터 함양·산청에는 지리산의 맑은 정기로 약효가 좋은 약초들이 지천에 널려 ‘한의학의 본고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동의보감』을 집필한 허준은 함양·산청의 특별한 약초를 알아보고 이곳에서 의술을 펼치면서 한의학을 집대성했다.

오늘날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산청 ‘동의보감촌’이다. 우리나라 한의학의 역사를 집약한 한의학 박물관, 맑은 공기와 기를 받는 기 체험장 등이 함께 자리한 종합한방휴양촌이다.

‘한의학의 고장’이란 타이틀을 선점한 것은 산청이지만, 함양 역시 좋은 약초가 풍성한 곳으로 함양토종약초시장에 가면 금세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현지인들과의 거래가 활발해 무엇보다 ‘중국산 가짜’에 속을 염려가 없다. 더불어 약초를 수집·판매하는 상인들의 조언에 귀 기울이는 것도 약이 된다.

지리산과 덕유산을 ‘열두 폭 치마 두르듯’ 거느린 함양군은 80% 이상이 산으로 산천경계가 빼어나다. 물 좋고 산이 깊어 질 좋은 약초들이 유난히 많은 ‘약초의 고장’이다.

이곳에는 평생 1백 뿌리 이상의 산삼을 캔 심마니, 지리산·덕유산 일대 1천여m 봉우리를 제집 안방 돌아다니듯 드나드는 약초꾼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특히 2008년 10월 함양토종약초시장이 개장한 이후 이들을 지척에서 만나 ‘토종약초 이야기’와 ‘좋은 약초 고르는 법’ 등도 덤으로 얻어 금상첨화다.

함양토종약초시장은 함양군 안의면 안의장터에 있는 시장이다. 원래 안의 장날(5·10일)은 토종약초꾼들이 많이 드나들어 이 지역의 대표적인 ‘약초 장’으로 불렸다.

 

약초시장 건물에 들어서면 점포에 약초 종류가 너무 많아 혼란스럽지만 그윽한 약초 내음이 마음의 병까지 치유하는 듯하다. 이곳의 약초들은 인근 1천m 이상의 산에서 나는 토종약초들로 약효가 좋기로 소문이 나 있다.

산삼, 천마, 하수오, 백출, 당귀, 황기는 물론 헛개나무, 가시오가피나무, 옻나무, 어름나무, 구지뽕나무, 느릅나무, 엄나무, 벌나무, 현잎나무, 누룩나무…. 구기자, 오미자, 더덕, 도라지, 둥글레, 갈근, 인정쑥, 익모초…. 겨우살이, 지축, 초우, 미례, 잔대, 삼백초, 우슬뿌리….

특히 시장 인근에는 ‘이 지역 약재의 효능’과 ‘옳게 다려 먹는 법’을 잘 아는 탕제원이 있다. 약초시장에서 구입한 약재를 이들 건강원에 맡겨놓으면 제대로 다려 집까지 택배로 보내준다.

2003년부터 ‘산삼 1000만 포기 심기’를 역점시책으로 추진한 함양군이 약초 집산지인 안의면 안의재래시장에 개장한 이유는 수입산과 국내산 약초를 함께 취급하는 기존 6개 약령시장과 차별화하기 위한 것.

함양군은 토종 약초만 전시·판매하기 위해 시장에 약초 감별사도 배치해 즉석에서 약초 감별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지상 2층 건물 2개 동을 연결해 조성된 약초시장 1층에는 21개 약초 점포, 2층에는 지리산과 덕유산 일대의 약초를 전시하고 우수성을 홍보하는 약초전시관이 있다. 또 한의원과 한약재 전문음식점, 주차장 등도 마련돼 ‘미니 한방타운’으로 자리 잡았다.

함양군은 약초시장 홍보를 위해 서울·부산 등 대도시 시민과 상인들을 대상으로 약초시장과 약초재배현장, 관광명소를 둘러보는 ‘약초 팸투어’도 실시하고 있다.

100만평 규모의 산약초·한약초 단지를 조성중인 함양군은 2004년부터 대한민국 산삼축제를 개최해 ‘산삼의 고장’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 유명한 약초꾼 아버지 가업 이어

“봄이면 마당에 취나물이 산처럼 쌓였습니다. 아빠 때문에 항상 약초를 가까이 접했지만 고사리나 더덕, 도라지 외에는 아는 게 많지 않았습니다.”

약초 집안의 딸로 태어나 남부럽지 않은 평범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녀의 곁에는 항상 약초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약초에 무관심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약초와 사투하는 아버지의 삶이 마냥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시골 보통 아이들처럼 외지로 대학을 가면서 자연스레 타지 생활을 하고 고향에서 멀어졌다. 대학에서 관광을 전공하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근무했던 그녀는 지난한 우여곡절의 삶을 정리하고 2008년 고향 안의로 돌아와 새로운 약초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어려서 잘 모르고 시작한 삶에 많이 지쳐 힘들었던 시절이었지만, 지금은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너무 행복합니다.”

무한 긍정으로 밝게 사는 송미향 대표는 평생 고생할 것을 20~30대에 다했다고 고백한다. 그런 숱한 경험이 강한 지금의 그로 만든 토대이기에 후회는 없다.

머리가 좋은데도 가난한 환경으로 불행했던 아버지의 삶도 그녀의 진로 변경에 영향을 주었다. 아버지는 9살 때 작은할아버지의 산골짜기 집에서 머슴 비슷하게 허드렛일과 잡곡 장사 따라다니며 일만 하다 보니 학교에 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못 배워 외롭고 힘들게 컸지만 ‘매의 눈’을 가졌다고 했다.

매일 한자 공부를 하면서 신문에 글자를 썼고, 옛날에 경찰공무원 시험을 보려고 했지만 초등학교도 못 나와 중도에 포기할 때가 아쉬웠다고 했다. 실제로 아버지는 수사반장처럼 살았다. 베트남 참전용사로 부대에서 뭐가 없어지면 아버지가 수사를 했다는 에피소드까지 재미가 넘쳤지만 마음은 시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려운 가운데 동생들도 훌륭하게 키웠다. 그런 와중에 IMF 때 많은 돈을 뜯겨 힘든 시절도 닥쳤다. 그 당시 영주, 영천 도매시장에 약초를 많이 공급했는데 부도가 나 1억여원의 잔금을 못 받은 것이다. 결국 그 충격으로 식음을 전폐하는 등 고통을 겪은 것이 훗날 위암까지 발병했다.

송미향 대표는 “지금은 다행히 기적적으로 항암치료 끝에 완치돼 건강하다”며 “어릴 때부터 산을 많이 타면서 운동을 한 탓인지 아직도 나이에 비해 날렵한 몸을 유지하는 데 가족 모두가 감사할 뿐이다”고 말했다.

 

▲ “약초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습니다”

“약초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고 신기합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아빠께 수시로 물어보고 책을 보며 깨우칩니다. 물론 관련 자격증을 따면서 계속 공부했지요.”

송 대표가 유명한 약초꾼의 가업을 이은 지 8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약초를 더 배워야 한다고 겸손해 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아버지 일을 도와주는 개념이었다. 그녀가 맡은 생활화된 택배 배송은 금방 숙달됐지만 약초를 알아야 하는 전화 응대는 곧바로 벽에 부딪쳤다.

“약초를 판매하려면 웬만큼 알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아빠께 물어보는 것도 한계가 있고, 아빠가 안 계시면 아예 응대할 수 없었습니다.”

송 대표는 그후 『동의보감』이나 『본초강목』 등 옛 문헌을 보면서 약초를 터득해 나갔다. 물론 틈나는 대로 가장 훌륭한 스승인 아버지로부터 배워 터득해 가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의 주변에는 약초가 널려 있어 눈과 귀, 코만 열면 남들보다 더 빨리 쉽게 익힐 수 있었다.

『동의보감』에는 1400여종 약초들의 용도와 체질에 맞춘 처방까지 달라 약초 공부가 마냥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약용식물관리사, 보건식품처방사, 발효효소관리사, 약용식물자원탐색지도사 등 다양한 약초 관련 자격증도 취득했다.

생약수집소에서는 누구나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100여 가지의 상품 약초를 취급한다. 약초를 구입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설명해 줘야 한다. 그만큼 정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

약초 수집은 아버지가 도맡고 그녀는 판매만 한다. 지금은 소문이 나 전국적으로 팔려 나가 택배 배송 관리하는 것도 일이다. 그렇다고 판매 직원으로 아무나 쓸 수 없다. 약초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므로 해박한 지식이 필요한 데다 약초에 대한 애착도 있어야 하는 탓이다.

그런 열정이 있다 보니 이제는 약초 전문가로 웬만한 한의사 이상의 실력을 갖춘 송 대표이다. 약초에 대해 많이 알고 싶은 기자로서 그녀의 약초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짧은 시간이 아쉬울 정도였다. 또한 수시로 걸려오는 전국의 고객들을 응대하다 보니 오히려 시간을 뺏는 듯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판매 약초의 60~70%는 함양산으로 나머지는 외지에서 들여온다. 약초의 생육 조건이 기후나 토질마다 달라 함양에서 나지 않는 것들도 있는 탓이다.

“예전부터 약초 하면 함양에서 나는 것을 최고로 쳤다고 합니다. 기온차가 크고 향이 짙어 타 지역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곳 생약수집소를 찾으면 비교적 싼 가격에 최상의 물건을 만날 수 있다. 약초의 산지라 아무래도 싼 것도 있지만 인터넷 등에서 볼 수 없는 덤도 한 가득 안겨주기 때문이다.

MBC TV와 TV조선에 출연해 겨우살이를 소개하면서 일약 유명인으로 떠올랐던 송 대표는 겨우살이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해줬다.

겨우살이가 좋다는 것이 알려져 많이 채취하다 보니 점차 고갈된다고 했다. 더욱이 재배가 안 되다보니 발아시키는 것도 연구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는 것. 씨앗을 발라놓아 씨앗이 나오더라도 환경이 맞지 않아 불가능했다. 맞바람이 차고 습한 산에서 잘 자라는 특이한 환경을 맞추는 길은 자연밖에 없으므로….

“겨우살이가 너무 높은 데 있다 보니 나무를 잘라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콘크리트 대못을 박으며 올라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못을 빼지 않는 데다 수백 그루에 못을 박다보니 문제가 많습니다. 산림 훼손이 심해 3년 전 본보기로 3명에게 벌금을 1천만원씩 때린 적도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 생존하고 자생력이 강한 겨우살이에 얽힌 비화가 안타까웠다.

겨우살이를 따다가 떨어져 부상당하고, 멧돼지의 공격을 받아 죽은 사람도 있을 만큼 약초 인생에는 숨겨진 험로가 숨겨져 있었다.

   
 

▲ 한겨울 농한기, 한과 주문도 다 못 받아

“한과는 한겨울 농한기 때 장려했던 사업으로 잠깐 만들어 판매합니다. 날이 따뜻하면 녹고 변질될 위험이 있어 만들기 힘든 계절상품입니다. 기계가 아니라 수작업이다 보니 식구와 손님용밖에 못 만듭니다.”

지난 연말에는 농한기마다 팔아온 송씨네 한과가 대박을 쳤다. 지나치게 달지 않고 고소한 한과는 없어서 못 팔 만큼 주문도 못 받았다. 손재주 좋은 그녀의 어머니가 약초 단골에게 직접 만든 한과를 선물한 것이 입소문이 나 일반인에게 판매했다.

송 대표는 조만간 설비를 갖춰 한과 생산 공장을 만들어 보다 위생적이고 깨끗한 한과를 제공할 계획이다. 규모가 커지면 예기치 못한 일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다. 시설은 물론 서류, 사무실 평수, 건강검진 등 모든 것이 까다롭지만 떳떳하게 하려면 어쩔 수 없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함양군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 일조한다는 의미도 있다.

함양을 대표하는 먹거리 전통한과, 콩유과를 여러 업체들이 함양군 로고가 박힌 박스에 넣어 판매하다 보니 해프닝도 경험했다. 누군가 이물질이 섞인 한과를 선물받은 사람이 송 대표에게 전화해 항의하는 바람에 대신 사과해야 했다.

인터넷에 검색하니까 유일하게 전화번호가 나오는 곳이 생약수집소였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노하우가 틀려 서로 다른 맛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기름 냄새가 너무 심하다며 화를 막무가내로 내는 겁니다. 우리가 판 것이 아니라고 해도 부득불 사과할 수밖에 없었지요. 나중에 그 선물을 준 집에 전화해 신경 써서 만들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함양군만 해도 15~20군데서 만들다 보니 맛이 다 틀립니다. 시중의 깡통 엿을 쓰면 맛이 안 좋습니다.”

송 대표는 엿기름을 직접 만들어 옛날 방식으로 만들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맛이 나온다고 귀띔했다.

한편 송미향 대표는 지난 3월 부산 메가마트 동래점과 남천점에서 특판 행사에 참가했다. 이번 행사는 함양의 젊은 귀농인들이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자발적으로 판매에 나섰던 것이 주효해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특히 도시민들에게 지역 농특산물을 선보임으로써 옛 추억과 향수를 떠올리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송 대표는 “이번 봄맞이 특판 행사를 통해 함양군 농특산물의 우수성을 알리고 급변하고 침체된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어 농업인들의 소득을 증대시킬 좋은 계기가 됐다”며 “앞으로 더욱 노력해 함양군 발전에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련글
오늘의 한국~ 생약수집소 인터뷰